나의 기록법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기록 문화를 가장 많이 남긴 시대가 조선왕조이다. 정치를 운영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정치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조선 시대의 정치를 이해할 때 조선 왕조 정치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조선 왕조는 아주 많은 믿을만한 기록 문화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다.

때는 8월 말, 방학이 끝나가는 1996년의 여름 어느 날. 나는 정신없이 일기를 쓰고 있었다. 탐구생활은 진작 끝내 놓았고, 만들기는 엄마가 해주기로 했고 견학은 방학 초에 다녀왔고.. 문제는 일기였다! 한 달 넘게 밀린 일기는 나에게 일기가 아니라 숙제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그랬을거다. 유독 학기 중 보다 방학 때 일기 검사를 철저하게 하는데,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나는 늘 일기를 쓰며 보냈다.

그렇게 나에게 일기는 해야 되는 일(TASK) 중 하나였다. 일기를 쓰면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는 둥 글을 잘 쓸 수 있게 된다는 둥, 생각이 많아진다는 둥, 선생님과 어른들의 충고는 그저 귀찮은 일을 하게끔 만드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글쓰기와 담을 쌓고 살았고, 이과로 진학하면서 더더욱 글쓰기를 멀리하게 됐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그러던 중 고3 때 작문선생님을 잘 만나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됐는데, 이후 수능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더욱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대학 1학년 때는 1학년 교양필수인 ‘읽기와 쓰기’ 과목에 흥미를 느끼면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많아졌는데, 그 무렵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글쓰기 뿐만 아니라 글로 작성된 모든 것, 즉 ‘기록’에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플래너의 구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텐데, 프랭클린플래너는 하루의 일정과 할 일, 각종 메모를 분리해서 기록할 수 있게 돼있다. 뿐만 아니라 하루의 모든 기록을 월별로 인덱싱하여 보관할 수 있게 구조화 돼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한 번은 대학 1학년 때 아주 힘든 일이 있었는데, 문득 ‘작년 오늘엔 뭘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플래너 보관함을 열었던 적이 있다. 재수생활의 힘든 여정을 플래너에 모조리 적어놨기 때문에 대학 1학년 때의 대학 1학년 때의 어려움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잊어버리고 사라져간 많은 순간들을 플래너를 통해 기억할 수 있어서 그 뒤로도 하루의 일과들을 플래너에 기록하곤 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모든 도구들과 방법들을 나에게 맞게 수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 ‘기록 습관’을 나에 맞게 최적화 해보고 싶었다. 사실 고민도 많이 했다. 프랭클린플래너의 우선순위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더더욱. ‘GTD가 플래너시스템보다 낫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절하게 섞으면 더 낫지 않을까?!’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일정 관리를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기록도 나만의 방법으로 최적화하기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플래너의 ‘오늘의 기록사항’ 시스템을 조금 수정해서 적용해 봤다. 바로 Daily Report라고 하는 것인데, 하루의 모든 사실들을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문서를 작성, 출력하여 보관하는 것이다. 보고서이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개인의 느낌이나 생각도 들어갈 수는 있으나 주가 돼서는 안 된다. ‘미래의 나’에게 보고한다는 느낌으로 양식을 갖춰서 작성하면 훗날 열람하기 편할 것이다.

단순하게 일기를 적으면 적기도 오래 걸리고, 항목들도 구분돼 있지 않아서 열람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Daily Report라고 명명한 문서에 일어난 시각, 전 날 잠든 시각, 아침-점심-저녁 식사는 누구와 어디서 했으며 얼마가 들었고, 운동은 얼만큼 했는지, 돈은 얼마나 벌었고, 썼고, 책이나 기사는 어떤 부분을 얼만큼 읽었는지, 그날의 TM(혹은 TD)는 어떤 문서가 있는지, 돌아다닌 사이트 중 괜찮은 곳은 어디가 있는지, 그 날의 느낌이나 생각은 어떤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는 어땠는지 등 가능한 모든 내용들을 한 장의 A4용지에 사실에 입각해서 작성한다. 물론 ‘반성’이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해서 주관적이 내용을 담아도 좋다.

글로 작성하는 일기나 키워드 등으로 메모하는 일기보다 Daily Report가 좋은 점은 좀 더 완벽하게 ‘사실’위주로 작성됐다는 점, 그리고 전반적인 내용이 구조화돼 있고 정리 돼 있다는 점이다. 구조화가 돼 있고 정리가 돼 있다는 점은 바로 언젠가 찾아보기 쉽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왜 기록을 할까요? 당장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찾아보기 위해 기록을 합니다. 보조기억장치(일기나 블로그 등)에 메모리를 분산해서 저장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메모/글쓰기의 주 목적은 나중에 그것을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하루를 기록하고 보관할 때도 미래를 생각해서 하면 나중에 찾아보기가 수월하겠죠! ‘아 나는 2009년 1월 19일에 아침은 굶었고 점심은 선배가 사줬고 저녁은 볶음밥을 먹었구나. 돈은 만 원 가량 썼는데, 운동은 하나도 안했네!’


다음 글에선 Daily Report 작성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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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크몬드 2009/01/27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글쓰기는 '시작'이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