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읽기의 즐거움 - 學而時習之 不亦說

논어를 처음 읽다

책꽂이 한켠에 논어를 꽂아놓고 종종 읽어왔습니다. 논어는 아시다시피 공자와 그 제자들이 토론형태로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nick님의 블로그을 보고 논어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미 한문을 배웠지만 내것으로 만들면서 배우지 않아서 잊어버린지 오랩니다. 일이삼사오는 읽을 수 있지만 어려운 글자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문득, 논어를 읽으면서 한문공부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논어로 배우는 한문

고등학교 때 기간제교사로 와 계시던 한문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어떤 다른 한문선생님과 다르게 열정적이었습니다. 다른 한문선생님이 그저 한문선생님이라면, 그분은 훈장님 느낌과 비슷합니다. 한자 한 글자 한 글자보다 문장의 의미를 살려주시며, 문장보다 그 문장에 내제된 깊은 뜻을 전달하기위해 애쓰셨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세상을 살다보니 한문의 중요성? 아니, 최소한 모르는 것보단 아는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을 아는 것, 물리는 아는 것은 생각의 깊이를 다르게 해줍니다. 여기에 한문을 알고있으면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질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논어의 글귀를 종종 올릴 예정입니다. 전체가 될 수도 있고,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옛것도 모두 익히고 새것도 익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學而 편의 첫번째 문장입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그 뜻을 쉽게 설명하면 배우는 것이 기쁘지 않은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군자답지 않은가? 입니다. 논어를 다시 읽게 되고, 그 뜻을 하나씩 곱씹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첫 문장이었습니다. 논어 해석본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한문으로 된 문장을 옥편을 찾아가며 해석을 했더니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논어를 읽으며 즐거움을 느끼다

사실 이 논어의 첫 문장을 이해하게 된 계기는 경험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은 중고등학교땐 할 수 없었습니다. 20대 중반이 되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는 것도 자취를 시작하면 즐거워졌습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학교앞에서 자취를 하고있는데, 인천에서 멀리까지 친구가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세 번째의 문장은 사연이 많습니다. 한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것에 대해서 열을 내고 남이 잘못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분명 나는 능력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데, 나에게 맞지 않는 일만 골라 시키며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자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면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노여움이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교양 물리의 핵심이라고할 수 있는 F=ma 식 하나만 갖고도 얼마든지 "썰"을 풀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걸 갖고 철학을 논하던 물리과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항상 "아는 만큼 본다"라고 말하는 지인이 있는데, 내 생각엔 "아는 만큼 본다"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다"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논어를 읽고 깊은 사고를 하는 교양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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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ㅅㅇ 2010/03/20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을 다스리고 다잡는데는 고전서.. 특히 동양고전서가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