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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9 메모를 하려면 말이지

 메모 관련 글을 포스팅하며 어줍잖은 노트 사진이라도 하나 올려주는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나의 귀차니즘은 키보드를 두드리기에도 벅차다.

 나는 공부는 잘 못했어도 낙서 하나는 끝내주게 좋아했으니, 학창시절 사용하던 교과서는 친구들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각종 수업 관련 메모부터 불필요한 끄적임까지 온통 교과서를 도배했기 때문이어라.

 뭔가 끄적이는걸 좋아한다. 모니터 앞엔 팬타그래프 방식의 낮은 키보드와 게이밍 마우스, 그리고 싸구려 마우스 패드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데 마우스 옆으로 내 회의용 노트와 그 밑으로 노-란색 스크래치 패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스크래치 패드- 생각나는 것을 정리하지 않고 일단 적기 위함이다. A4용지도 좋고 메모장도 좋지만 난 노-란색 스크래치패드가 좋더라. 끄적끄적 썼다가 북- 찢어서 버리기 쉽고 한 권에 천원정도 하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다 뭐다 해서 프랭클린 플래너를 4년째 사용하고 있고 또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플래너를 전도한 내가 이젠 플래너에서 일반 노트로 갈아탔다. 플래너의 정신은 잘 알겠는데, 그리고 그렇게 하면 성공할거란 말에 공감도 하겠는데 뭔가 너무어렵다. 3년차까진 그럭저럭 잘 써왔지만 네번째 플래너 속지(1년치가 약 3만원돈이다)를 사고 나니 뭔가 이건 주객전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래너를 쓰는 사람은 나고, 내가 플래너를 쓰는건데 어쩐지 플래너가 내 인생을 좌우하고 있는 것 같고.. 물론 플래너를 사용함으로서 인생을 길게 보고 '균형'을 맞춘다는 원래의 취지는 잘 알겠는데- 문득, '내가 지금 하고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 과 비교를 했을 때 이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괴이한 생각을 해봤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함으로써 목표 달성엔 도움이 되고 성취감을 느낄 순 있겠지만, 당장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에 황농문박사의 몰입이라는 책을 보고있는데, 이 책의 내용이야말로 프랭클린 플래너와 어느정도 대치되는 내용인 것 같다.

 난 메모를 좋아한다. 스크래치패드에 끄적이는 것도 좋아하고 플래너에 기록하는 것도 좋아한다. 플래너의 기록이 나중에 찾아보기 좋게 시스템화 돼있다는 것은 알지만 돼지털(digital)이 보편화된 세상에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메모를 플래너에 한다는 것은 조금 어불성설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메모"의 정석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좋은(비쌀 수도 있고 저렴할 수도 있다) 노트 혹은 메모지에 꾸준히 기록하고 보관한 것은 언젠가 쓸모가 있다 라고 생각한다.

 최근 프랭클린 플래너의 족쇄에서 탈피하고 몰스킨(Moleskine)으로 갈아타려고 고민을 해봤으나, 내가 처음 프랭클린플래너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만큼 와닿지는 않았다. 16500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그리고 만원의 기회비용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좀 더 마음 편하게 값싸고 질 좋은 종이에 마음껏 메모하고싶다. 기록은 메모한 후에 남겨지는 것이지, 메모도 하기 전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장당 500원짜리 몰스킨 노트를 사게되면 일단 비싸서- 메모하는 일이 줄어들거고, 자연히 기록하는 일 조차 줄어들 것 같았다.

 아날로그 메모를 굳이 돼지털화 하고싶은 생각은 없지만, 핵심 키워드나 몇몇 문장만큼은 돼지털문서화 해두면 나중에 색인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늘 아날로그로 메모하기 전에 보관성과 검색의 용이성을 고민하곤 했는데, 이제는 적당한 노트와 적당한 필기구로 맘껏 메모하고, 또 싸구려 스크래치패드에 휘갈겨 쓰기도 하고- 마음껏 메모를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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